기독교가 가르치는 죄와 복음에 대하여
기독교를 제외한 종교는 대체로 죄를 행위적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죄를 저질렀나 안 저질렀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죄를 없애거나 줄이기 위해 수련합니다.
예를 들어, 악한 행위는 나쁜 업을 쌓아 이것이 나중에 고통으로 돌아온다고 믿는 종교가 있습니다. 또, 자신이 행했던 악한 행위를 씻기 위해 의식을 수행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회개, 일정한 기도, 금식, 자선 등을 행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제대로 공부해 본다면, 이런 생각은 성경적 생각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곰팡이
제가 벨기에에서 혼자 살 때의 이야기입니다.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두었는데, 어느날 먹으려고 보았더니 음식에 곰팡이가 생긴 겁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했습니다. 곰팡이만 제거하고 이 음식을 먹을 것이냐, 아니면 아깝지만 이 음식을 전부 버릴 것이냐.
그런데 음식에 곰팡이가 피었고, 그게 눈으로 보인다는 것은, 곰팡이가 이미 이 음식을 다 먹었고, 마지막으로 깃발을 올렸다는 의미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곰팡이 하나만 제거한다고 해서 이 음식이 깨끗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죄
그리고 기독교가 말하는 죄도 이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죄라는 행위(자범죄)는 우리의 본성이 이미 죄로 가득하기 때문에 나오게 되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 마음 상태가 이미 죄로 오염되어 있는데, 곰팡이 하나만 제거한다고 해서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악한 행위를 이야기하면서, 여기도 곰팡이가 보인다, 저기도 곰팡이가 보인다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제거하는 데에만 급급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행위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합니다. 본성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와 자범죄입니다.
- 원죄는, 이미 우리의 본성 자체가 죄로 물들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병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자범죄는, 이렇게 본성이 질병에 걸려 있으면, 그 증상으로 악한 행위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상을 보고 우리 영혼의 질병을 알라는 겁니다.
본성이 바뀌어야지, 행위 하나 바꾼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의인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막2:16-17]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아무리 몸이 아픈 사람이라도 자기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사를 찾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서 바리새인들이 딱 그런 꼴입니다.
암환자에게는 몇 가지 증상이 있습니다. 갑자기 살이 빠지거나, 식욕이 저하되거나, 피곤하거나, 잠이 많아지는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암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건강하다며 의사를 만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코에 콧물이 나면 콧물을 닦고,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고 버티다가 결국 말기암까지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 증상이 나타나면 빨리 자기가 아프다는 걸 인정하고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죄라고 하는 증상이 드러난다면, 빨리 우리의 죄성을 인정하고 얼른 예수라고 하는 의사를 만나야 합니다.
다른 종교와 알미니안에서는 질병 그 자체(원죄)보다 증상(자범죄)에 대해 집중하지만, 본래 기독교는 초대교회 때부터 질병의 증상(자범죄)이 아니라 질병 그 자체(죄성 또는 원죄)를 고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하고 견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개혁주의입니다.